유로화가 달러화 약세의 반사효과에 따라 지난 1년간 가치상승세를 보이고 있으며 당분간 이러한 추세가 꺾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기업들은 유로화 통화자산을 늘리고 유럽에서 비즈니스 기회를 확충하는데 주력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유로화가 1년전에 비해서 달러화와 엔화에 대해 모두 강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1월 20일 유로화 환율은 1유로당 1.0685달러(뉴욕현물)로 마감됐다. 이로써 유로화는 달러화에 대해 1년전에 비해 21%나 절상됐다. 같은 날 엔/유로 환율도 1유로당 126.08엔을 기록, 엔화에 대해서는 전년대비 7.4% 절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원화에 대해서도 같은 기간동안 유로화는 7.8% 절상되었다.
상대적으로 유로화의 對엔화 절상 폭이 對달러화 절상 폭에 비해서 작게 나타나고 있다. 이는 달러화가 모든 통화에 대해서 약세를 보이는 가운데 엔화의 對달러 절상 폭이 유로화의 對달러 절상 폭보다 낮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 외환당국이 지나친 엔화 강세가 수출에 타격을 준다고 판단하여 엔화 강세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시장개입 의지를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일본 경제의 부진 양상이 지속될 것으로 판단되는 점도 엔화 강세 기조를 제약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달러 약세의 반사적 효과
불과 1년만에 유로화가 강세통화로서 등장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살펴보기로 한다. 사실 지난 2002년 2월 하순 이후 지속되고 있는 유로화의 가치 상승은 달러화 가치하락에 따르는 반사적 측면이 강하다. 뒤집어 보면 유로화 가치상승의 요인은 달러화 가치하락의 원인과 같은 맥락을 갖는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는데, 특히 최근에는 이라크전 가능성이 고조되고 북핵 문제가 대두되는 등 미국이 중심에 있는 국제정치적 위기가 달러화 하락을 부추기고 있다. 지난 1월 20일 콜린 파월 미국 국무장관은 이라크가 무장 해제에 실패할 경우 세계는 이에 대한 대응으로부터 물러나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하는 등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강경 입장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북핵 문제에 대해서도 미국은 북한과 뚜렷한 입장 차이를 보이면서 위기감을 누그러뜨리지 않고 있다.
이러한 미국 주도의 국제정치적 사안들이 어떻게 해결되느냐에 따라서 달러화 가치가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9.11 테러 이후 국제적 분쟁은 미국에 대한 테러를 연상케 하고 이에 따른 미국의 군비확대 및 재정지출 증가 가능성도 높아지기 때문에 국제정치 불안은 달러화 약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불확실성이 감소해야지만 달러화 가치가 회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그동안의 달러 고평가에 대한 투자자들의 인식이 바뀌고 있다는 점도 달러화 하락 요인이다. 연간 4,000억 달러를 초과하는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 기조가 고착화되면서 투자자들이 달러화 가치에 대해 신중히 검토하게 된 것이다.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 폭을 감안할 때 달러화가 그간 강세를 유지했던 것이 오히려 비정상적이었다. 이외에도 지난 2002년 미국을 강타했던 대기업들의 회계부정과 그에 따른 신뢰도 추락도 투자가들을 냉담하게 만든 요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지난 2002년 이후 유럽자본의 미국 이탈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금리격차가 또다른 원인
한편 미국과 유럽간 금리격차의 발생은 유럽으로 자금유입을 유발시키고 유로화 가치를 상승시키는 근본 요인이 되고 있다. 지난 2년간 미국은 경기부양을 위해 12차례의 금리인하를 시행했다. 그 결과 미국의 연방기금금리는 41년만의 최저치인 1.25%를 기록하고 있다. 이에 비해 유럽중앙은행은 물가불안을 우려하여 미국보다 제한적인 금리인하를 실시했다. 현재 유로존의 기준금리는 2.75%로 미국에 비해 1.5% 포인트 높은 상태이다.
당분간 미국과 EU의 추가 금리인하 계획이 없는 가운데 현행 금리 격차가 유지될 전망이다. 미국 FRB는 오는 1월 28, 29일 첫 번째 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를 갖게 된다. 지난 2002년 11월에 0.5%p 금리인하를 단행하면서 정책기조를 ‘중립’으로 선회했기 때문에 이번 FOMC 회의에서 금리인하는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ECB(유럽중앙은행)의 두이젠베르크 총재도 통화량, 경기상황 등을 종합 판단하건대 추가금리인하 계획은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다만, 미국의 최근 경제지표가 악화되고 경제전망이 어두워짐에 따라 추가금리 인하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되지 않고 있다. 이 경우 미국과 유로존의 금리격차는 더욱 벌어지게 되고, 유로화 가치는 달러화에 대해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유로화 가치상승과 미국-유럽간 금리격차로 인해 유럽으로의 자본유입이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지난 2002년 9월에는 유럽인들이 외국, 주로 미국에서 포트폴리오 투자자본을 회수했다. 이는 글로벌 주식시장의 가치하락이 심각한데 따른 현상이었다. 이에 따라 당월에 유로존의 포트폴리오 투자는 121억 유로의 순유입을 기록했다. 당시로부터 1년전인 2001년 9월에도 미국의 9.11 테러사건을 계기로 유럽인들의 주식자금 환류 사태가 발생한 바 있다. 최근 3년여 동안 월간 데이터로 유럽의 포트폴리오 투자가 순유입을 보인 것은 2001년 9월과 2002년 9월의 2번에 그치고 있다. 앞으로 유로화 가치가 안정되고 유럽경제의 회복세가 정착된다면 유럽으로의 자금유입은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유로화 가치상승 제한될 듯
그렇지만 유럽의 경제회복세도 지지부진한 점을 감안할 때 유로화 강세가 한풀 꺾일 가능성도 적지 않다. 유럽의 경제상황은 미국보다 안 좋은 것이 사실이다. EU의 경제성장률은 지난 2002년에 0.8%로 추정되어 미국의 2.2%보다 낮으며, 2003년에도 1.4%로 예상되어 미국의 2.5%보다 낮을 것으로 보인다. EU내 최대국가인 독일은 GDP의 3.8%에 달하는 재정적자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역내 평균 8%에 달하는 실업률은 EU 성장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재정건전화와 노동시장 유연성 및 실업문제 해소 등 구조적 개혁조치가 시급히 취해지지 않는 한 유럽경제의 회복은 기대하기 어렵다.
또한 유로화 가치상승으로 수출품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면 유로존 경제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는 우려도 더 이상의 유로화 상승을 억제할 가능성이 있다. 이와 함께 지금의 달러화 약세에는 이라크전이 불가피하다는 인식이 선반영됐다는 점에서도 이라크전이 장기전에 빠지지 않을 경우 달러화의 큰 폭 추가 하락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금년 상반기에 비해 하반기의 유로화 강세 기조는 누그러질 것으로 예상된다. 하반기에는 이라크전 변수가 소멸하고, 미국 경기회복이 가시화되면서 상대적으로 달러화가 회복세를 보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유로화 안전자산으로 부각
향후 유로화 가치에 대한 전망은 ‘지속적 상승’보다는 ‘강세 기조 정착’에 무게가 실릴 것으로 보인다. 유로화 환율은 다소 등락을 겪겠지만 1유로당 1달러의 등가 수준에서 정착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유로화의 위상과 유럽경제에도 적지 않은 변화를 줄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안전자산으로서 유로화의 위상이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본 바와 같이 미국은 이라크전, 북핵 문제 등의 국제적 위기가 고조되면서 달러화 약세에 직면해 있다. 반면 유로화는 안전자산으로 각광을 받을 소지가 커졌다. 지난 2001년말 기준으로 유로화는 전세계 외환보유고의 13%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2002년에는 유로화 강세가 지속됐던 점을 감안했을 때 유로화 보유비중이 보다 늘어났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외환보유고가 풍부한 아시아 국가들이 달러화 자산의 상당분을 유로 자산으로 전환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대다수 전문가들이 예상하는 것처럼 금년에도 유로화 강세가 지속된다고 봤을 때 세계 외환보유고에서 유로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그렇지만 단시일내 유로화 비중이 20% 이상으로 늘어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며, 유로화의 국제통화로서의 위상 강화는 중장기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유로화 강세가 유럽경제에는 부정적이면서도 다른 한편 긍정적 영향도 끼칠 전망이다. 일단 유로화 강세는 유럽내 수출업체들의 가격경쟁력을 떨어뜨려 수출에 불리한 영향을 줄 것이다. 유럽 자동차업체들은 유로화 강세로 인해 해외판매, 특히 미국시장에 대한 수출이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더욱이 유럽의 경직적인 노동시장과 과다한 기업규제를 미뤄볼 때 수출업체의 신속한 대응이 지연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런 점에서 EU 위원회는 현재 유로화의 빠른 절상 속도에 대해서 내심 당혹해 하고 있다.
반면 유로화 강세가 수입물가를 낮춤으로써 물가안정에 도움을 주고, 그 결과 경기부양을 위한 금리인하의 여지가 커질 것으로 기대되는 측면이 있다. 이는 ECB 총재나 독일의 분데스방크 총재 등이 유로화 강세에 대해 여유있는 태도를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유로화 출범 당시 ECB의 중요한 목표 가운데 하나가 유로화 가치유지 및 위상강화였다. 지난 1999년 유로화 출범당시 1유로당 1.15달러를 잠시나마 넘었던 적을 상기하면 현재의 유로화 강세는 그리 우려할 수준은 아닐 수도 있다.
대EU 수출호조 효과 기대
유로화 강세가 일시적 현상에 그치지 않는다고 봤을 때 우리 경제가 어떠한 영향을 받을지 검토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1유로에 대한 원화 환율은 지난 2000년 10월말에 963원으로 가장 낮았다. 다시 말해 유로화에 대한 원화 가치가 가장 높았던 때이다. 이후 유로화는 2001년부터 1유로당 1,100원대를 회복했고, 2002년 2월 하순부터 꾸준한 가치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지난 2002년 12월부터는 1달러에 대한 원화환율보다 1유로에 대한 원화 환율이 더 높아지면서 두개의 환율이 역전되었다. 1달러에 대한 유로화 가치가 등가수준(1:1)을 넘어 섰음을 의미한다. 이는 지난 2000년 2월 이후 1유로 대 1달러 밑으로 유로화 가치가 하락한 지 2년 9개월만의 일이다.
우리 수출업체 입장에서는 유로화 절상추세를 감안할 때 달러화보다는 유로화를 결제대금으로 받아서 환전하는 것이 유리해졌음을 의미한다. 반면 수입업체는 유로화 표시 동일제품에 대해 이전보다 더 많은 원화를 환전해서 수입대금을 조달해야 되는 부담이 생겼다.
유럽에 대해 수출입을 동시에 담당하는 업체라면 유로화로 수출대금을 받고 수입대금을 달러화로 결제하는 것이 바람직할 수 있다. 그것이 어렵다면 유럽내 수출입 결제는 유로로 통일하여 환차손을 줄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궁극적으로 유럽에서 비즈니스 기회를 확충하고 수출을 늘리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유럽내 현지 자회사를 운영하는 회사의 입장에서는 유로화 통화자산을 늘리고 결제시스템을 완비하는 한편 현지부품조달 비용을 낮추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유로화 가치상승으로 현지 노임 및 부품비용이 증가하게 되므로 고용을 축소하고 인근 동구권 등으로 부품 조달선을 바꾸는 등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
달러 약세 대책도 동시에 고려해야
그렇지만 실제로 대부분의 무역거래, 유럽과의 무역거래에서도 달러화 결제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아직까지는 달러화가 가장 중요한 통화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유로화 강세의 긍정적 효과보다 달러 약세에 따른 대미수출 감소의 부정적 효과가 더 클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지역별 무역비중을 보더라도 미국은 EU보다 중요한 교역대상국이다. 우리나라의 대 EU 수출은 지난 2002년 1∼11월에 194억 8,100만달러를 기록, 전체 수출에서 13.2%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또한 수입은 같은 기간중 153억 5,400만달러로서 전체에서 11.2%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에 비해 같은 기간중 우리의 대미 수출입은 전체 수출입에서 각각 20.2%, 19.6%의 비중을 점하고 있다.
따라서 유로화 강세에 대한 대책 뿐 아니라 달러화 약세에 대한 대책도 동시에 고려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최근의 유로화 강세-달러화 약세가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중장기적인 추세라는 점을 감안하여, 국제자본시장에서 유로화 자금조달을 강화하는 방안도 모색해야 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