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낙환 | 2010-06-01 |
바이오 기술의 발전에 따라 표준화된 생물학적 부품을 조합하여 인공 생명체를 만드는 합성생물학이 주목을 받고 있다. 합성생물학은 유전자 분석 및 조합 기술의 발전과 녹색 산업에 대한 관심 증가로, 향후 바이오 연료 및 바이오 화학의 핵심 기반 분야로 성장할 전망이다.
할리우드에서 개봉한 ‘가타카(Gattaca)’는 유전자로 신분이 결정되는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한 SF영화이다. 선천적으로 열성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 주인공이 정체를 숨긴 채 자신의 꿈인 우주비행사가 되기 위한 과정을 그리고 있다. 영화 제목 자체가 G(구아닌, Guanine), A(아데닌, Adenine), T(타이민, Thymine), C(사이토신, Cytosine)의 4개 유전자 염기를 의미하는 이 영화에서는, 인간이 유전자를 통제하여 생명체를 창조할 수 있는 미래를 가정하고 있다. 개봉한 지 벌써 10년도 넘은 영화 속 세상의 실마리가 우리들의 시야에 최근 보이기 시작했다.
바이오 분야의 합성생물학(Synthetic Biology)이 그것이다. 합성생물학은 기존 생명체를 모방하거나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인공생명체를 제작 및 합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학문으로, 인공생물학이라고도 불린다. 1953년 미국의 왓슨과 영국의 크릭에 의해 DNA의 이중나선 구조가 밝혀진 이후 꾸준히 발전해 온 바이오 기술이, 생명복제를 넘어서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인공생명체를 제작 및 합성하는 단계로 발전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미 우리 주위에는 유전자 변형식품(GMO, Genetically Modified Organism), DNA 검사, 줄기 세포 등 바이오 기술이 많이 다가왔지만, 인간의 통제하에 바이오 기술을 보다 산업적인 용도로 사용하기 위한 수단으로 합성생물학이 응용될 수 있다. 먼저 합성생물학의 특징에 대해 살펴본 뒤, 합성생물학에 따른 미래 바이오 산업의 발전 방향을 예상해 보았다.
부품들로 기계장치를 만들 듯 생명체를 합성
합성생물학은 바이오 및 나노 기술의 발전에 따라 유전자 서열분석 및 합성이 확산되면서 2000년대 초반 구미 지역에서 처음 등장한 신생학문이다. 2003년 MIT에서 합성생물학 실험 수업이 개설된 이후, 합성생물학을 연구하는 실험실이 전세계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합성생물학의 등장 배경에는 바이오 분야에 IT 기술을 활용한 바이오인포메틱스(Bioinformatics)의 도움이 컸다. 인간의 경우만 하더라도 30억 개의 염기서열과 2만~2만 5천 개의 유전자가 존재할 정도로 유전 정보가 방대하다. 게다가 RNA, 대사경로 등 생물 시스템을 이해하기 위한 정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이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컴퓨터 및 수학, 통계 도구들이 필요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합성생물학의 특징은 나사나 볼트, 베어링 등 여러 부품을 사용하여 기계장치를 만들 듯이, 표준화된 생물학적 부품을 조합하여 새로운 생명시스템이나 생명체를 만든다는 것이다. 얼핏 듣기에 인간의 필요에 의해 생물의 유전자를 인공적으로 가공하는 기존의 유전공학(Genetic Engineering)과 유사하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합성생물학은 모듈화, 표준화와 같은 공학적 접근을 통해 생물 시스템의 주요 개념을 분석하고 설계하기 때문에, 기존의 DNA, 세포, 개체 등을 수정 및 변경하는 수준에 그쳤던 유전공학과는 차이가 있다. 또 생물학 시스템 구성체들 간의 관계 및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시스템 생물학(System Biology)과도 목적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요컨대 합성생물학은 시스템 생물학, 바이오인포메틱스, 나노 기술 등을 기반으로 한 신생연구 분야로, 바이오 기술이 실험실을 벗어나 엔지니어링 단계로 진입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학문으로 볼 수 있다.
현재 합성생물학의 기술 수준은 인공 미생물이나 박테리아를 만드는 단계까지 도달하였다. 인공생명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생물학 시스템을 컴퓨터로 모델링하고, 이를 구현하기 위한 DNA 염기서열분석과 유전자 합성 기술이 필수적이다. 이러한 기술들을 사용하여 작은 세포의 DNA 일부 또는 전체를 인공적으로 합성한 후, 세포에 삽입하여 인공세포를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그림 1> 참조). 실제로 올해 5월 사이언스지에 따르면, 미 연구팀이 마이코플라즈마 마이코이즈(Mycoplasma mycoides)라는 박테리아 유전자 전체를 인공 합성한 후 마이코플라스마 카프리콜룸(Mycoplasma capricolum) 박테리아에 주입하여 이를 번식하는데 성공하였다.
미국을 중심으로 정부와 민간 연구 활발
지역별로 보면 미국의 합성생물학 연구가 가장 활발하다. 2009년까지 미국에는 100여 개 대학교, 50여 개 회사를 포함한 총 200여 개의 합성생물학 연구 단체가 존재하고, 벤처 캐피탈 등을 통해 약 10억 달러가 투자되었다. 반면에 유럽은 35개 대학교, 10개 회사 정도로 연구 시설의 절대수도 부족하고 투자 금액도 3,000만 유로 정도로 많이 뒤쳐지는 상황이다.
합성생물학의 성장에는 정부 지원이 밑바탕이 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국립과학재단(National Science Foundation)을 통해 합성생물학 연구센터(Synthetic Biology Engineering Research Center)에 1,600만 달러를, 에너지부(Department of Energy)는 BP(British Petroleum)와 함께 합성생물학을 연구하는 바이오에너지 연구소(Energy Bioscience Institute)에 5억 달러를 지원할 계획이다. EU도 과학기술지원 프로그램인 FP(Framework Programme)를 통해 합성생물학을 미래 잠재력이 큰 유망 과학기술 분야로 선정하고 연구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있다.
민간에서는 합성생물학을 연구하거나 관심 있는 과학자들 간의 교류가 활발하다. 2004년 제1회 국제 합성생물학 학술회의가 시작된 이후 2008년 4번째 회의가 홍콩에서 개최되었고, 2011년에는 미국 스탠포드 대학에서 5번째 회의를 가질 예정이다. MIT가 주관하고 일반 대학생이 참가하는 iGEM(international Genetically Engineered Machine competition) 대회의 경우 국제적 관심이 높은 상황이다.
화이트 바이오 분야를 중심으로 성장 가속화
합성생물학은 에너지, 화학 등 화이트 바이오(White Biotechnology) 산업을 중심으로 성장이 가속될 전망이다. 물론 합성생물학은 바이오 신약, 바이오 칩, 치료 등의 의료분야인 레드 바이오(Red Biotechnology), GMO, 건강기능식품 등 농업 부문의 그린 바이오(Green Biotechnology)에도 적용이 가능하다. 하지만 최근 녹색경제에 대한 기업들의 관심과 정부정책에 힘입어 바이오 에너지, 친환경 산업공정, 바이오 연료 등의 화이트 바이오 분야에서 합성생물학을 활용하기 위한 노력이 활발하다.
시장 전망을 통해 이러한 현상을 짐작해 볼 수 있다. 합성생물학 내 시장 구성을 보면 R&D, 제약, 화학, 에너지 등으로 나눠 볼 수 있는데, 2008년에는 제약 및 R&D 분야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였다. 그러나 유럽과 미국의 바이오 연료 확대 정책에 따라 2013년에는 에너지 관련산업이 11억 달러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바이오 연료 사용촉진을 위한 정부 대책 기구를 설립하고, 자금 지원 및 생산 시설 확대 등 강력한 정책 드라이브를 걸고 있기 때문이다. 이밖에 바이오 화학, 제약 분야도 빠르게 성장하면서 합성생물학의 시장 전체 크기는 2008년 2억 달러에서 2013년 24억 달러로 연평균 약 60%의 성장이 예상된다(<그림 2> 참조).
미래 에너지 및 화학산업의 생산성 혁신 기대
그렇다면 합성생물학은 구체적으로 어떤 산업에 도움을 줄 수 있을까?(<표> 참조) 대학 및 순수 연구 R&D 분야를 제외하고 제약, 바이오 화학, 에너지 분야를 중심으로 살펴보자.
우선 제약 분야에서는 합성 미생물을 통해 약물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일례로 UC버클리 대학의 키슬링(Keasling) 교수는 빌 게이츠 재단의 도움을 받아 합성생물학을 통해 말라리아 치료제 아르테미시닌(Artemisinin)의 생산성을 높였다. 대장균과 효모의 유전자 조합을 통해 합성 미생물을 만들고 생물의 대사경로를 조절하여, 아르테미시닌 생산량을 수십 배 향상시켰다. 또 암, 에이즈, 유전병과 같은 질병의 경우, 감염된 세포를 찾아내어 사멸시키는 인공 미생물의 생물체 기반 치료제 개발에 합성생물학이 사용될 수 있다. 혈관을 타고 돌아다니면서 질병 세포를 찾아 치료하는 맞춤형 미생물을 만드는 것이다.
석유를 대신하여 바이오매스로부터 화학물질이나 의약품을 생산하는 바이오 리파이너리에 합성생물학이 사용될 수 있다. 화석연료의 고갈과 환경 오염 문제로 바이오 플라스틱과 같은 바이오 화학제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석유에 비해 생산 비용이 높아 경제성이 떨어지는 상황이다. 그러나 합성생물학을 이용하면 생산 공정에 사용되는 미생물인 바이오 촉매의 개발을 용이하게 하여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일찌감치 듀퐁, BASF 같은 석유화학 업체들은 바이오 화학에서 합성생물학의 가능성을 높이 보고 연구개발에 활발히 투자하고 있다.
합성생물학은 수송용 연료를 대체하기 위한 바이오 에탄올, 바이오 디젤 등의 바이오 연료 생산에서도 필요하다. 바이오 연료는 효모와 같은 미생물을 통해 당분을 발효시켜 액체연료를 얻는다. 이때 합성 미생물을 사용하면 발효 시간을 줄이고 생산 수율을 높일 수 있다. 일례로 미국의 LS9, AMYRIS 기업 등은 합성 미생물을 이용하여 에탄올, 디젤, 항공유 등을 시험 생산하고 있다. 특히 비식용작물인 목질계 셀룰로오스나 해조류를 이용하는 차세대 바이오 연료 시장에서도 생화학 반응을 최적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합성생물학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기술, 안전과 윤리, 특허 문제가 주요 이슈
다양한 분야에 걸쳐 합성생물학이 활발히 적용되고 있지만, 기업 측면에서 산업 진출 시 몇 가지 주의할 사항이 존재 한다. 추가적인 기술개발로 가격을 낮추고, 생명 경시 및 인공 생물체에 대한 안정성 문제를 주의해야 하며, 다국적 기업의 기술 독점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우선 유전자 분석 및 조작 기술이 많이 활성화 되었지만, 상업화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실제로 한 사람의 유전자 DNA 염기서열분석에는 현재 기술수준으로 약 1백만 달러가 소요된다. 인간의 DNA가 총 30억 개의 염기쌍으로 이루어져 있으니, 염기쌍 3,000개를 분석하는데 1달러가 드는 것이다. 유전자 합성은 더욱 비싸다. 염기쌍 하나를 합성하는데 1달러의 비용이 드는데, 현재 가장 작은 유전자를 가진 세포인 마이코플라스마 제니탈리움(Mycoplasma genitalium)의 유전자를 인공 합성할 경우 580만 달러나 소요된다. 게다가 유전자 이외의 합성단백질 분야와 인공세포와 같은 바이오 시스템 분야는 기술 수준이 많이 떨어지기 때문에 추가적인 기술개발이 매우 중요하다.
둘째로 생명경시의 윤리 문제와 인공 생물체의 안정성 문제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생명복제와 마찬가지로 생물의 합성 및 변형이 쉬워지면서 생명을 경시하는 풍토가 조성될 수 있다. 또 처음 의도와는 다르게 인공 생명체가 인간에 치명적인 질병을 발생시키거나 생화학무기로 사용될 수 있기에 항상 주의할 필요가 있다. 비록 실험실의 특수한 환경에서만 가능한 인공 생명체라도 예상치 못한 긴급상황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국가 차원의 법률제도도 아직 갖춰지지 못한 상황이기 때문에, 연구자들의 자율규제와 인식 교육에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셋째로 선도 기업의 기술 독점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대비책이 필요하다. BBF(Bio-Bricks Foundation)처럼 생물학 부품을 대중에게 공개하고 마음껏 사용하게 하려는 노력도 있다. 그러나 선의의 경쟁을 통한 기술개발을 유도하는 측면에서 합성생물학에 대한 지적재산권 보호가 인정되는 상황이다. 현재 생물학적 부품 및 구성 요소에 대한 특허 출원이 증가하고 있으며, 인공 생명체에 대한 특허도 논의가 진행 중에 있다. 특히 BASP, 메타볼릭스(Metabolix), 상가모(Sangamo Biosciences) 등의 소수의 화학 및 바이오 기업에 특허가 집중되어 있다. 이러한 현상은 향후 산업의 진입장벽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특허 라이센싱, 크로스 라이선스 등의 대비책이 기업에게 필요하다.
녹색과 헬스케어 두 유망사업의 핵심 기반 기술
지난 20세기 초 화학 원소나 간단한 화합물을 이용하여 새로운 화합물을 제조하는 합성화학이 산업 전반에 막대한 변화를 일으켰다. 마찬가지로 21세기의 합성생물학이 산업에 미치는 파급효과 또한 매우 클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합성생물학은 최근 주목 받고 있는 녹색산업과 헬스케어의 두 유망사업을 아우르는 핵심 기반 기술로서 그 가치가 높다고 할 수 있다. 합성생물학을 통해 제작된 인공 미생물 및 박테리아를 사용하여 바이오 연료 및 화학제품, 신약 개발 분야에 혁신을 앞당길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합성생물학은 컴퓨터를 사용한 설계와 표준화된 바이오 부품을 사용함으로써, 바이오 기술의 산업화 기틀을 마련해 준다. 공학적 원칙을 사용하기 때문에 사전설계, 최적화, 대량생산 등 기존 제조업과 유사한 특징이 있어 파급효과는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