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합작투자의 함정과 극복 방안 인도 합작투자의 함정과 극복 방안

문권모 | 2006-01-25 |

최근 “인도시장에 진출할 때에는 합작보다 단독으로 투자하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현지 시장 여건을 감안할 때 합작 투자는 아직 포기하기 어려운 대안이다. 인도 합작 투자의 위험을 극복하기 위한 대응 방안을 알아보자.

 

급격한 경제 성장을 보이는 인도 시장에 대한 관심이 한층 더 고조되고 있다. 인도는 엄청난 잠재력의 11억 인구를 가지고 있으며, 최근 3년간 7%대의 경제성장률을 기록 중이다. 인도에 대한 글로벌 기업들의 투자도 매년 늘고 있다. 최근 발표된 자료에 의하면 인도는 외국인 직접투자(FDI) 선호도에서 미국에 앞서 세계 2위를 차지했다(<그림 1> 참조).


한국 기업들 역시 인도 진출에 적극적이다. LG전자와 삼성전자는 이미 가전시장을 주도하고 있으며, 현대자동차는 시장 점유율 2위에 올랐고, POSCO도 대규모 투자를 진행 중이다. 게다가 한국은 내년 초 타결을 목표로 다음달 인도와 FTA 협상을 시작한다. FTA가 체결될 경우 국내 기업의 인도 시장 진출은 더욱 활성화될 전망이다.

 

 

인도 합작 투자 흐름의 변화


그런데, 최근 들어 주목할 만한 점은 인도 시장 투자의 트렌드가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이전의 인도 투자는 현지 업체와의 합작이 중심이었다. 합작을 해야만 진출 자체가 가능한 경우가 많았고, 현지 사정을 잘 모르는 해외 시장에 진출할 때는 합작을 통해 위험을 줄이는 것이 정석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합작 투자보다는 단독 투자를 강조하는 것이 주류이다. 많은 인도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합작을 피하고, 단독으로 투자하라”고 강조한다. 글로벌 기업들의 행보 역시 단독 투자에 더 무게 중심을 두고 있다.


단독 투자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것은 우선 합작 투자 관련 실패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합작 실패 사례는 국내외 기업을 통틀어 무척이나 많고 다양하다. 인도에서 성공적으로 뿌리내린 LG전자와 현대자동차는 “현지 업체와의 합작 관계를 조기에 청산하거나, 애초부터 단독으로 사업을 추진한 것이 성공 요인”이라고 평가 받는다.


인도 현지 투자의 경험이 쌓이면서 글로벌 기업들의 자신감이 커지고 있는 것도 원인이다. 인도 정부도 계속 외국인 직접 투자에 대한 규제를 풀고 있다. 지분 소유 상한선이 점차 높아지고 있으며, 기존 사업 실패 시 파트너의 동의를 얻어야만 동종 사업에 신규진출 할 수 있는 것(No Objection Certificate)과 같은 규제가 철폐되고 있다.

 

 

인도 합작 투자의 위험성


인도 합작 투자의 실패 원인은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갈등과 인도 기업의 투명성 및 전문성 부족, 외자 기업의 준비 결여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 경영 문화의 차이로 인한 파트너와의 갈등


인도 기업들과 다국적 기업들은 우선 경영 마인드에서 차이가 난다. 다국적 기업은 대부분 현지에서 이익이 발생했을 때 재투자를 통해 시장 점유율을 늘리려고 한다. 반면 현지 합작사들은 이익을 우선 회수하는데 중점을 둔다. 삼성전자도 이익금 활용 문제 등으로 합작사 비디오콘(Videocon)과 갈등을 겪다 결국 합작관계를 청산했다.


주요 안건의 처리 속도에 대해서도 차이가 난다. 대부분의 다국적 기업은 빠른 의사 결정을 통한 신속한 전략 수립과 실행을 원한다. 반면 인도 기업의 의사 결정은 느린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하지만, 만약 결정을 재촉할 경우 이것은 파트너에 대한 결례 혹은 공격적인 행동으로 인식되어 나중에 반드시 후유증이 생긴다.


의사 결정이 최상위 경영자에 집중되어 있는 것도 문제다. 인도에서는 거의 협상이 끝난 것으로 생각했는데 마지막 순간에 결정이 뒤집히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것은 명목상의 협상 대표가 충분한 재량권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 적은 지분으로 경영 참여 요구


인도 합작사들은 자기 주장을 많이 하며, 합작사의 주도권을 쥐려는 경향이 강하다. 합작사의 지분이 적은 경우에도 현지 시장 및 소비자에 대한 노하우, 정부 기관과의 관계 유지, 현지 종업원 관리 등을 내세워 대표 이사직 등 경영 참여를 요구하며, 다수 지분을 가진 파트너의 결정에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경우가 많다. 인도에서는 50% 이상의 지분을 확보하는 것이 별 의미가 없다. 26% 이상의 지분만 가지고 있어도 중요한 의사 결정에 개입하거나, 대주주의 결정에 제동을 걸 수 있기 때문이다.


한때 인도 자동차 시장을 석권했던 마루티 스즈키의 사례에서 이런 위험이 잘 드러난다. 마루티 스즈키는 인도의 국영 자동차 회사 마루티와 일본 스즈키가 합작으로 세운 자동차 회사다. 갈등은 1997년 인도 정부가 스즈키의 반대를 무릅쓰고 바스카루두 (Bhaskarudu) 사장을 임명한 것에서 시작됐다. 54%의 지분을 가진 스즈키는 신임 사장의 무능을 이유로 강력 반발했고, 양자는 급기야 법정 다툼까지 벌이게 되었다. 마루티 스즈키는 경영권 다툼의 와중에 신차 출시 등 중요한 사업 타이밍을 놓쳤고, 현대자동차 등 경쟁자들에 대해서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했다. 그 결과 1997년 83%에 이르던 시장 점유율은 2004년 51%로 줄어들었다.

 

● 도덕적 해이 만연


또 하나의 문제는 인도 전문 경영인의 자질이 부족한 경우가 많을 뿐만 아니라 도덕적 해이로 인한 횡령 사건 등이 심심찮게 발생한다는 점이다. 인도 합작사가 내세우는 경영인은 대부분 합작사 최대 주주의 친인척으로, 회사 돈과 개인 돈을 잘 구분하지 않는 경우가 흔하다. 게다가 횡령 등 문제가 생겨도 직접적인 책임은 거의 지지 않는다. 잘못하면 회사가 ‘껍질’만 남게 되는 것이다.


합작 계약 후에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 경우도 흔하다. 특히 자본금 납입을 약속해 놓고 사업이 본 궤도에 오를 때까지 지급을 미루는 경우가 많다. 물론 사업이 지지부진하면 자본금 납입은 ‘없던 일’이 된다.

 

● 계약에 밝은 인도인


인도에 나가있는 한국 기업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것이 “인도인들을 우습게 보다가는 큰 코 다친다”는 점이다. 인도 상인은 오래 전부터 협상에 능숙하기로 유명하다.


인도인들은 영국 식민지 시대의 영향 때문에 다른 개발도상국과 달리 계약과 법적인 문제에 익숙하다. 말로는 모든 것을 다 해줄 것처럼 하다가도 막상 계약서에 명기되어 있지 않은 문제에 대해서는 완전히 안면을 바꿔버린다.

 

 

합작 투자가 불가피한 이유


문제는 그렇다고 해서 합작 투자를 완전히 포기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꽤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인도 시장은 아직 100% 개방된 상태가 아니다. 인도 정부는 “일부 분야만 빼놓고는 시장 개방이 상당히 이루어졌다”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것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지 않는 ‘두루뭉술한’ 표현일 뿐이다.


물론 91년 인도가 시장 개방을 선언한 이후 점진적인 개방 정책이 이어져 왔다. 그러나 에너지, 금융, 유통 등 아직까지 완전히 개방이 안된 분야가 상당수 남아 있다. 인도 정부가 계속적인 시장 개방을 공언하고 있기는 하지만, 야당의 반대 등으로 진전이 느린 경우도 부지기수다. 민간 은행의 외국계 지분 비율을 74%까지 높여주겠다는 정부안은 실행 시기의 발표가 계속 미뤄지고 있다. 소매업은 조만간 시장을 개방한다는 방침이지만, 개방 초기의 외국인 지분은 26%까지만 허용될 예정이다.


이렇게 시장 개방이 안된 분야에서는 단독 투자를 할래야 할 수가 없다. 그렇지만 단독 투자가 어렵다고 손을 놓고 있는 것은 더더욱 위험하다.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시장을 남들이 먼저 선점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현지 기업과의 합작이 유일한 대안이 될 수도 있다.


현지 소비자에 맞게 제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해야 하는 분야에서도 합작이 유리하다. 가격에 민감한 현지 시장 조건에 맞추기 위해서도 현지 업체와의 협력이 필요하다.


게다가 인도는 아직도 투자 위험이 높은 시장이다. 인도의 부패와 관료주의는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수준이며, 시장 역시 인도만의 특수성이 강하다. 명목상으로 시장이 열려 있는 경우에도 실질적으로는 다양한 진입 장벽이 존재한다.


건설 시장을 예로 들어 보면 시장의 위험 정도와 개방의 실상이 단적으로 드러난다. 인도 정부는 지난해 초 외국인의 부동산 개발 시장 100% 직접 투자를 허용했다. 그러나 시장 상황을 조금만 자세히 살펴보면 100% 단독 투자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인도는 넓은 국토를 가졌지만, 부동산 개발에 이용 가능한 토지가 무척 적다. 등기 제도의 미비로 소유자가 복수인 경우가 흔하며, 용도 변경 등 개발과 관련된 인허가 문제 해결은 정부 관료와의 커넥션이 없으면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최근 인도 부동산 개발 시장에 진출한 UAE의 에마르(Emaar)와 싱가포르 아센다스(Ascendas)는 모두 현지 업체와 합작 계약을 맺었다.


따라서 결론은 가능하면 단독 투자가 바람직하지만, 아직까지 인도 시장에서는 합작 투자를 해야만 할 충분한 이유가 남아있다는 것이다. 즉, 합작 투자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옵션이며, 합작 투자는 무조건 피해야 할 선택이라고 주장해서는 인도 시장 진출 시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대신 합작 투자의 함정을 충분히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성공적인 합작투자를 위한 대비책


그렇다면, 성공적인 합작 투자를 위해서는 어떤 대책이 필요한 것일까?

 

● 사전 조사를 철저하게 하라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사전 조사를 철저히 실시해야 한다. 시장과 파트너사에 대한 조사 부족은 쓰디쓴 경험으로 돌아오기 쉽다. 특히 파트너 후보는 반드시 복수를 물색해 두어야 계약 진행시에 끌려다니지 않는다. 지난해 가을 델리에서 만난 교민 한 사람은 “무작정 인도에 비행기를 타고 오는 사람이 많다”며 “영어도 한마디 못하는 사람이 홀홀단신으로 샘플만 들고 오면 어떻게 하느냐”고 안타까워했다. 물론 중소기업에 관한 이야기지만, 의외로 과거 주먹구구식으로 진출했다 투자금만 날린 대기업도 상당히 많다.
‘문제가 생기면 소송을 하면 된다’는 생각은 일찌감치 버리는 것이 좋다. 인도는 복잡한 법규와 관료주의로 인해 행정절차의 종류가 많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 월드뱅크(Worldbank)에 따르면 인도에서는 계약의 강제이행에 425일, 사업의 청산에는 무려 10년이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 가능하면 대기업과 합작하라


히로 혼다(Hero Honda), 허치슨 에사르(Hutchison Essar) 등 인도에서 성공한 합작 기업은 대부분 대기업과의 조인트 벤처이다. 대기업과 합작을 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파트너가 일정 수준 이상의 자금 여력을 가지고 있어야 사업 추진이 쉽기 때문이다. 앞서 지적한 대로 인도측 파트너가 자본금 납입을 미루거나 이익의 재투자를 꺼리는 것은 열악한 자금 사정이 원인인 경우가 많다.


또한 대기업은 상대적으로 글로벌화된 경영 능력과 문화를 가지고 있다. 인도 대기업에는 해외에서 유학하거나 근무를 해본 고급 인력도 많다. 따라서 상식에 어긋난 요구를 하거나 억지를 부리는 일이 상대적으로 적다.

 

● 경영권을 양보하지 말라


인도 경영층의 역량 부족과 도덕적 해이 가능성을 생각할 때 반드시 경영권을 확보하는 편이 낫다. 인도 파트너는 대관 업무와 시장 적응 문제 등을 이유로 낮은 지분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영권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도 경영권을 양보하지 않고 현지인을 활용하는 편이 더 나은 경우가 많다. 믿을만한 현지인 직원을 채용하거나 에이전트(Agent)를 이용하면 현지 파트너를 적절하게 견제하면서 현지 시장에 적응해 나갈 수 있다. 다만 이 경우에도 에이전트의 도덕적 해이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해 놓아야 한다.

 

● 51% 지분은 부족하다


인도에서 지분률 26%는 큰 의미를 가진다. 언뜻 적어 보이기도 하지만 26%의 지분은 대주주의 행동에 제약을 걸 수 있는 막강한 힘이 있다. 인도 상법에 의하면 회사 경영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사항은 주주 75%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분률 관련 규정을 잘 이용하면 파트너와의 문제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다.


먼저, 확실한 지배권을 행사하려면 51%가 아니라 75% 이상의 지분을 확보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적은 지분을 가진 파트너에게 끌려 다닐 수 있다. 반대로 26%의 지분만 가지면 적은 비용으로 대주주를 견제하는 것이 가능하다. 파트너의 경영권 간섭을 완전 봉쇄하고, 현지 시장에 대한 노하우만을 이용하려면 상대 지분이 26% 미만이 되게 해야 한다. 실제로 최근 인도 진출 결정을 한 다국적 기업들은 파트너의 지분률을 아예 10% 정도에 맞추고 있다.

 

● 언제든 헤어질 준비를 하라


혼다(Honda)는 1984년 히로 그룹(Hero Group)과 합작 계약을 맺은 이래 10년마다 한번씩 계약을 갱신해 오고 있다. 이것은 조건이 맞지 않으면 언제나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최근에는 자본금 납입 등 합작 과정에서의 약속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자동으로 계약이 해지되도록 계약서를 만드는 경우도 많다.


미국이나 유럽 기업들은 초기에는 합작 투자로 진출했다가, 나중에 사업이 커지면 지분을 인수해 독점적 경영권을 확보하는 방법을 많이 쓴다. 모토로라, 레드햇 등이 합작사의 지분을 100% 인수해 자회사로 전환한 예이다. 한편으로는 같은 업종 내에서 합작사 이외의 별도 회사를 만들거나 인수해 파트너를 압박하기도 한다. 원래 이것은 인도 기업들이 즐겨 사용하는 ‘딴주머니 차기’ 수법이었으나, 요즘에는 일부 다국적 기업들도 사용하고 있다.

 

오늘날 인도 시장을 살펴보면 초장기의 중국 시장을 떠올리게 된다. 중국 진출 초기에도 국내 기업들은 현지 여건 때문에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그 당시에도 파트너와의 갈등이 주요한 이슈 중 하나였다. 그러나, 지금의 중국 시장을 보면 상전벽해(桑田碧海)란 말이 딱 들어맞는다. 중국의 시장 여건과 현지 기업들의 역량이 성숙하여 이제는 파트너와의 분쟁이 크게 줄어들었다.


인도 정부는 외국인 투자, 특히 제조업 투자를 끌어올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따라서 인도 시장의 여건도 점차 개선될 것이다. 앞서 지적한 대로 인도는 11억 인구를 가진 거대 시장이다. 포기하기에는 잠재력이 너무 크다. 우리 기업들이 도전과 역경을 극복하고 새로운 ‘기회의 땅’ 인도에서 또다른 성공 신화를 만들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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