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카드산업 진화과정과 국내 카드산업의 향방 미국 카드산업 진화과정과 국내 카드산업의 향방

한원종 | 2003-07-02 |

미국 카드산업의 발전과정을 통해 볼 때, 국내 카드산업은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신용정보회사의 활성화 등 다양한 지원시스템이 보완된다면 장기적으로 성장성과 수익성 있는 사업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여전히 높다.

정부가 5월 중순 카드관련 추가조치 불가의 입장을 밝힌 가운데 지난 4.3 카드대책의 시한이 6월말로 다가오면서 올 하반기에 돌아오는 약 25조원 규모의 카드채권 처리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카드대책 이후 지난 3개월 동안 각 카드사의 적극적인 IR활동, 증자계획 이행 그리고 합병 등의 자구노력의 결과로 유동성 위기 가능성은 다소 낮아지고 있지만 신용카드 연체율은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향후 국내 카드산업의 수익성, 성장성 등에 대한 전망이 아직도 불투명한 상태에서 시장에서는 카드산업의 미래에 대해 낙관적 전망과 비관적 전망이 공존하고 있다. 카드산업의 종주국이자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 카드산업의 진화과정 및 특징을 살펴보고 유동성 위기 이후 국내 카드산업의 향방을 살펴본다.


미국 신용카드산업 현황

2002년 말 현재 세계 신용카드 규모는 Visa, Master, American Express의 이용대금을 기준으로 볼 때 3조 9,289억 달러에 달한다. 이 중 미국 내에서 사용된 금액은 1조 3,736억 달러로 세계시장에서 35%를 차지할 정도로 카드산업이 발달되어 있다. 미국 카드산업의 성장성을 보면 소매금융업의 특성상 경기변동과 비슷한 움직임을 보여 변동성이 크지만 카드산업의 종주국답게 1987년~2002년 동안 연간 누적성장률 13%의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2002년 6월말 현재 FRB의 보고에 따르면 1950년 본격적인 카드산업이 출현하기 시작한 이후 미국에서 신용카드를 발행하는 금융기관은 6,000개를 넘어섰고, 카드발급 대행기관까지 합치면 10,000개에 달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 6,000개의 기관은 주로 은행과 신용조합(Credit Union)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최근에는 MBNA 등 전업계 카드사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있다. 미국 신용카드 산업의 브랜드별 시장점유율을 보면 Visa와 Master Card로 대표되는 은행계 브랜드 발급사가 78%로 가장 높고, 여행 및 오락에 특화한 American Express Card가 16%, 소매점계 카드로 성장한 Discover Card가 6%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 카드산업의 특성

1. 수익성이 높은 미국 카드산업

첫째, 미국 카드산업은 10% 이상의 안정적인 성장성뿐만 아니라 수익성도 매우 높은 특징을 보이고 있다. 일반적인 카드사의 경영이나 수익성을 평가할 때는 ROE(자기자본이익률)와 ROA(총자산이익률) 지표를 이용한다. 단순히 카드사의 카드채권이나 현금서비스 등 신용채권 잔고가 증가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으며, 보유한 신용채권에서 최종적으로 얼마의 수익을 달성했는가를 평가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1992년부터 2001년까지의 미국 카드산업과 은행산업의 수익성을 ROA 개념을 통해 비교해보았다. 과거 10년간 자산 2억달러 이상의 은행계 카드사들의 세전 영업자산 대비 수익은 3.1%로 나타났다. 반면 미국 은행산업의 세전 자산대비 수익은 1.78% 였다. 수익성에 있어서 카드산업이 은행산업 보다 무려 1.7배나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었다.

이렇게 미국 카드산업의 여타 금융산업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성을 유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격 비탄력적인 신용카드 산업

우선 미국 신용카드 산업은 가격변동에 민감하지 않는 비탄력적인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신용카드 산업의 시장구조를 보면 완전경쟁시장이 형성될 조건을 이미 갖추었다. 카드회사 수가 10,000개나 되는 등 시장진입에 제한이 없고, 당국의 가격규제도 없으며 가격이나 서비스에 대한 카드회사 간의 담합도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미국 카드사의 주 수입이 되는 리볼빙 카드이자율((미국 카드산업 수입에서 68.4% 차지) 추이를 보면 시장 금리보다 매우 높으며 시장 금리의 등락에도 불구하고 탄력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높은 수준에서 고정되어 있는 특성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1980년대까지 평균 17% 내외의 수준을 유지하던 신용카드이자율은 1980년대 초반 시중금리 상승추세에 따라 1983년에는 최고치인 18.8%까지 올랐다. 이후 1980년대부터 각 카드사들이 회원규모를 늘리기 위해 유치 경쟁에 열을 올리던 시기에도 신용카드 이자율은 매우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반면 은행의 대출 Prime Rate가 18.9%에 이르렀던 1981년에 신용카드 이자율은 17.8%로 오히려 낮은 수준을 보이는 등 비탄력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렇게 신용카드산업에서 가격 비탄력적인 특성이 나타나는 이유는 신용카드 고객이 카드사를 선택하는 탐색비용이 높고, 신용카드 회사를 바꾸는 데 따르는 교환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또한 신용카드를 이용하는 주 고객이 신용도가 낮고 위험이 높은 계층이기 때문에 신용도가 우량한 고객보다 높은 대출 금리에도 상대적으로 덜 민감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카드산업의 가격 비탄력적 특성은 미국 카드산업이 장기적으로 은행보다 높은 이익을 얻을 수 있었던 주요 원인이 되었다고 판단된다.

비용축소 경쟁을 위한 사업구조

미국 카드산업에서 외주사업(Out-sourcing)의 활성화는 카드사의 비용절감 효과로 이어졌다. 미국 신용카드 시장은 국내와 달리 진입장벽이 없고 가맹점 구조도 개방형이기 때문에 다양한 카드관련 업체들이 시장에 진출해서 카드관련 업무들이 분야별로 전문화되어 있는 시장구조를 갖추고 있다. 이로 인해 미국 카드사들은 국내 카드사들이 전담하는 데이터 처리, 카드 발급, 고지서 발부, 우편 처리, 기록 관리, 회계 및 청산, 데이터 입력, 결제 처리, 일반 관리 등의 거의 전 업무를 분업화하였거나 외주를 주고 있다.

외주비율은 신용카드사의 자산규모에 따라 달랐는데 비용절감을 위해 소형 회사들은 대부분의 카드관리업무를 아웃소싱 형태로 운영하여 고정비를 축소한 반면, 중대규모 카드사들은 외주뿐만 아니라 임대료와 인건비가 저렴한 곳으로 카드관리 부서를 이동해서 운영비용을 절감하기도 했다. 이처럼 카드관련 업무가 분야별로 전문화되어 있고 외주비율이 높기 때문에 최소한도의 규모를 유지하면서 매우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어 미국 은행계 신용카드사의 평균회원 수가 10만명 정도에도 불구하고 높은 수익률을 올릴 수 있었다.

효율적인 위험관리 능력

미국 카드사의 리스크 관리능력이 매우 뛰어난 점도 높은 수익성을 달성하는 이유이다. 카드회사의 마케팅능력이 매우 우수하여 대출잔고를 빠르게 늘리고 운영비용을 절감할 수 있더라도 리스크 관리체계가 미흡하여 수익을 압박할 경우 이는 결국 카드사업의 실패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즉, 카드사업 성공 조건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뛰어난 리스크 관리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미국 카드산업도 국내 카드산업과 마찬가지로 2001년부터 최근까지 카드사들의 연체율 상승으로 한차례 홍역을 치르고 있다. 하지만 1993년부터 2002년까지의 미국 카드사들의 연체율 수준을 보면 4~6%대의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하면서 국내 카드산업과 같은 급증현상은 없었고 대손비율도 매우 양호한 수준을 보이고 있다. Citi Bank, MBNA, Bank One 등 상위 12개 신용카드사의 대손비율을 살펴보면 2002년 2분기 5.52%로 최고점에 달했지만 올 1분기에 5.32%로 전년 수준을 회복했다. 2002년 8.1%라는 국내 카드산업의 대손비율과 비교하면 매우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 신용카드시장은 국내와 달리 리볼빙 카드가 활성화되어 있다는 점에서 직접적인 비교에는 다소 무리가 있지만 연체율과 대손비율이 일정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은 국내 카드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2. 정보비대칭 문제, Credit Bureau(신용정보회사)로 보완

둘째, 고객의 부채 지불능력과 관련된 정보의 비대칭 문제를 Credit Bureau (신용정보회사)의 기능을 통해 보완한 점이 미국카드산업의 주목할 만한 특징이다.

카드사는 개별 고객에 대한 포괄적인 신용정보를 이용해서 가격을 결정하고 신용 프로그램을 설계할 때 안정적인 수익과 영업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각 카드사는 수 많은 개별 고객이 가진 다양한 신용정보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정확한 카드가격을 산정하기 어렵다. 이는 곧 신용카드사와 고객간의 정보의 비대칭 문제를 유발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 카드사들은 정보비대칭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평균 3~4개 전문 Credit Bureau업체와 계약하고 카드를 발급하기 이전에 개인 신용정보를 철저히 분석하고 있다. 대표적인 Credit Bureau로 Equifax, Trans Union, TRW 등이 있다. 이들 기관은 약 100개의 대행업체를 소유하고 있으며 지역 제휴기관에 정보 보고용 소프트웨어를 제공함으로써 전국적인 데이터 베이스를 구축하면서 정보의 수집, 기록, 보관의 자동화, 정보의 축적에 대한 노하우를 가지고서 차별화에 성공하여 금융기관에 신용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이렇게 개인의 포괄적인 신용정보의 접근이 가능한 상태에서 신용카드사와 고객은 가장 최적의 가격 조건에서 금융거래를 할 수 있고 결국 사회전체적으로 신용시장의 효율성과 성장을 달성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이 미국과 영국 등 신용정보의 개방성이 높은 국가들의 대손상각률이 신용정보의 공개가 상대적으로 제한적인 아시아 국가들의 대손상각률 보다 낮게 유지될 수 있는 시스템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3. 1990년대부터 진행되고 있는 구조조정

셋째, 미국 카드산업은 90년대부터 시작된 본격적인 구조조정이 계속되고 있다. 호황을 누렸던 미국 신용카드산업도 1990년대 들어 큰 환경변화를 맞이했다. 1991년 경기침체로 불과 성장률이 6%대에 머물렀던 성장률이 1995년 22%대를 정점으로 시장이 포화상태에 진입하였으나 성장이 둔화되고 수익성이 악화되면서 구조조정이 촉진되었다. 주택담보 대출과 같은 대체상품의 발달도 카드산업의 성장 속도를 더욱 둔화시켰다. 또한 1988년부터 시행된 정보공개법은 소비자가 신용카드사간 가격조건과 무이자기간 등 신용카드관련 정보를 비교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면서 가격경쟁을 더욱 가속화 시킨 요인으로 작용했다.

시장 포화상태를 맞이한 미국 카드사들은 우선 우량고객을 유인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실제로 Capital One 등 전업계 카드사를 중심으로 계좌이체서비스(Balance Transfer)가 제공됨으로써 우수 회원유치를 위한 가격경쟁이 촉발되었으며, 고객의 신용상태에 따라 고위험-고수익 시장과 저위험-안정적인 수익을 제공하는 시장 등 시장분할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러한 환경변화는 신용카드사간 적극적인 마케팅 및 가격경쟁을 초래하여 규모의 경제 및 차별된 서비스 등 핵심경쟁력을 보유하지 못한 카드사는 시장에서 퇴출되었다. 그 결과 채권액 기준 Top5 카드사의 시장점유율은 1994년 35.6%에서 2002년 60.7%로 확대된 반면, 업계 순위 20위 밖의 카드사의 시장점유율은 20.4%에서 2002년 2.6%로 크게 감소하는 등 미국 카드산업의 집중도는 더욱 심화되고 업계 선두 카드사를 중심으로 대형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4. ‘시장경제 지향’과 ‘소비자 보호 강화’를 위한 규제

넷째, 미국정부의 신용카드 정책방향이 ‘시장 경제 지향’과 ‘소비자 보호 강화’에 있다는 특징이다. 흥미로운 것은 미국 카드산업에서도 과거에는 국내와 마찬가지로 회원모집, 카드사의 고금리, 카드대금 연체와 관련된 소비자 보호 등이 사회 문제화되었다는 점이다. 심지어 과당경쟁이 최고조로 달했을 당시에는 어린이나 애견 이름으로도 신용카드가 발송(Mass Mailing of Unsolicited Credit Cards)될 정도로 카드사간의 경쟁은 심각했으며 이외에도 다양한 형태의 신용카드 부작용이 발생했다. 이에 대해 미국정부는 1970년 무차별 카드발송을 금지하는 한편, 1972년 카드사업규제를 위한 법률(The Fair Credit Billing Act)을 제정하고 연방준비위원회(Federal Reserve Board)를 카드산업의 감독기관으로 지정했다. 1973년에 Federal Privacy Act를 제정하여 카드고객 신용정보의 불법적인 사용을 금지하는 등 이후에도 수 차례에 걸쳐 신용카드 영업행위에 대한 규제를 입법화하고 소비자 보호를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또한 당국은 신용카드 이자율의 비탄력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적으로 가격을 규제하기 보다 신용카드 관련 공시(Disclosure)를 강화함으로써 카드사의 시장지배력을 약화시키는 동시에 간접적인 가격인하 경쟁을 유도하는 정책을 폈다. 1988년 (Fail Credit and Charge Card Disclosure Act) 제정, 2000년 (Truth in Lending Act) 개정 등을 통하여 카드사로 하여금 카드이용자가 카드사용에 따라 지불해야 하는 비용을 정확하게 인식하는데 필요한 각종 정보를 제공하도록 의무화했다. 미국 정책당국은 이러한 공시관련 규제강화를 통해 소비자들이 탐색비용과 전환비용을 줄일 수 있게 함으로써 카드사들의 시장지배력을 낮추어 경쟁체제를 유도한 것이다.


국내 카드산업에 주는 시사점

이상과 같이 미국의 카드산업의 특성을 통해 신용카드 산업은 여타 금융산업보다 높은 수익성과 안정적인 성장성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산업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미국 카드산업의 높은 수익성과 안정적인 성장성은 신용정보와 관련된 인프라와 당국의 시장경제 지향적인 정책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즉, 내부적으로 정부의 진입장벽을 허무는 완전시장경쟁 정책을 실시하여 시장에서 경쟁을 촉진시켜 가격 효율성을 달성되도록 유도했고 외부적으로는 카드산업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Credit Bureau(신용정보회사)의 설립과 정보의 이용에 관한 규제법률 등 다양한 시스템으로 카드산업을 지원했다는 점이다.

현재 국내 카드산업이 단기적인 유동성 위기와 경영악화 등으로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정부는 카드사들의 문제를 시장논리에 맡기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고 국내 카드사들은 유동성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유상증자 및 금융기관과 카드채 만기연장에 대한 협상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미국 카드산업의 변천과정을 살펴보면서 지금 국내 신용카드 산업이 겪고 있는 어려운 상황은 이미 과거 50년 간 미국 카드산업이 발전해오면서 겪었던 과정이라고 판단된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들은 국내 신용카드회사, 정책당국, 소비자 등 시장 참여자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줄 수 있다. 국내 신용카드산업이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성장성과 수익성 있는 산업으로서의 매력도는 여전히 높다는 것이다. 단, 그것은 신용위험을 줄일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위험관리에 대한 철저한 대비가 이루어 질 때이다. 현재의 위기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더욱 내실을 기한다면 향후 국내 신용카드산업은 소비자금융의 중심축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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